엘소드는 인어를 바라봤다. 작은 인어상. 덴마크를 대표 하는 천재 동화 작가 '안데르센'의 대표작 인어공주가 돌 위에 앉아 아련하게 바다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행객들은 저마다 인어공주를 사진으로 찍고 있었다. 비극의 주인공 인어를 찍는 것이 무엇이 재미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엘소드는 삐뚤어진 한숨을 내뱉었다. 인어공주를 보니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인어 공주가 이유가 아니었다. 항상 떠오른 사람, 인어 공주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떠올랐다.
아인. 엘소드의 오랜 인연. 웃고, 울고, 화내지 않는 사람. 아인은 엘소드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엘소드가 여행을 떠나는 날까지 자음 하나도 꺼내지 않았다. 누구나 하는 쉬운 인사 안녕. 그 자체도 하지 않았다. 엘소드가 바라보는 바다 밑 심해와 같은 눈동자로 바라볼 뿐. 조용히 끝까지. 네가 그렇지. 엘소드도 아인에게 말하지 않고 홀로 여행을 떠났다.
엘소드는 옆을 흘겨봤다. 엘소드의 옆에는 아인이 서 있었다. 엘소드가 지금 떠올린 사람. 아인은 덤덤한 표정으로 아까 들린 카페에서 산 커피를 마시며, 작은 인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몰아치는 파도의 물결 따라, 그의 짙은 초록 눈동자도 몰아쳤다. 엘소드는 한숨을 쉬었다. 그의 한숨은 몰아치는 파도 소리 속으로 사라졌다.
엘소드는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로 결정한 덴마크에서 아인을 만날 줄 몰랐다. 사람이 붐비는 점심. 유명한 레스토랑. 우연히 합석한 레스토랑. 아인을 보고 놀란 엘소드와 달리 아인은 놀라지도 않았다. 덤덤하게 엘소드에게 본인은 출장 때문에 덴마크에 왔다 말했다. 엘소드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고, 이왕 만난 김에 두 사람은 짧은 여행을 같이 하기로 했다.
"너도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겼어?"
"엘소드, 어떤 말을 원하지"
"너"
아인의 갑작스러운 질문. 엘소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리도록 차갑고 매섭게 노려봤다. 꿀꺽, 엘소드의 울대가 움직였다. 아인과 엘소드는 말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둘 사이에 파도 순간 차오른 분노를 참으며 단어를 삼켰다. 마치 목소리를 빼앗긴 인어처럼. 감정은 마녀였다. 항상 엘소드의 목소리를 빼앗아가 가장 중요한 때 그를 향해서 진심도, 원망도 내뱉지 못하게 했다. 엘소드는 몸을 일으키고 걷기 시작했다.
"...엘소드?"
"저녁 먹으러 간다! 넌 안 먹어?"
"..."
아인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고 엘소드를 뒤를 따라갔다. 엘소드는 뒤 돌아보지 않았다. 아인이 따라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뭐 먹을래. 엘소드의 말은 인어를 집어 삼킨 파도 소리에 묻혔다.
